어머니. 친구라는 게 뭘까요.
우리가 태어나기 전, 어머니가 한참 뛰어놀던 어릴적,
그때는 친구의 정의가 지금과는 달랐을까요.
철없을 때는 싸우더라도 같이 노는 개구쟁이들이 친구였고
공부할 때는 책상을 같이 하는 학우들이 친구였고
취업하니 사내 직원들끼리는 또 '사우'라는 표현을 쓰는데
하지만 저는 학창시절부터 회사원이 된 지금까지
서로의 이야기를 들어주고 위로해주는 이들이 친구가 되네요.
저 멀리 인디언들은 "내 슬픔을 등에 지고 가는 자" 를 친구라고 하더라고요.
이 말을 처음 한 인디언은 평생 슬픔을 안고 살아온 걸까요.
어머니, 예전부터 참 궁금했던 게 있는데요.
왜 사람들은 연인이 생기거나 결혼을 하면 친구들과 멀어지는 걸까요.
연인이 생겼다 하여 다른 이성들이랑 연락을 하지 않으려 하고
심지어는 동성인 친구들과 멀어지기까지 합니다.
신뢰, 믿음, 이해, 배려는 현대 연인관계에서 찾아보기가 힘든 것 같습니다.
특히 한국은 더 그런 것 같아요.
그것도 아니라면 혹, 이게 문화로 자리를 잡아버린 걸까요.
그런거라면 이 한국을 벗어나고 싶습니다.
친구라는 건 결국 동성끼리만 허락되는 단어인 걸까요.
수개월, 수년 동안의 우정보다 이제 막 사귀기 시작한 '타인'에 가까운 연인이 그렇게 소중한 걸까요.
그것이 인간의 본능인 거라면 받아들여야 하는 걸까요.
그렇다면 저는 왜 인간들의 이런 행동들이 못미더운 걸까요.
그들에게 저를 봐달라고 애원하는 게 아니고요, 연락을 해달라는 것도 아닙니다.
그냥 그들에게 친구란 무엇인지 묻고 싶어졌습니다.
아마도 저의 대답과 그들의 대답에는 큰 차이가 있겠지요.
그 대답을 들어버리는 순간, 우리는 다른 길을 걸어야 할지도 모르겠습니다.
대부분의 한국 사람들은, 자신과 생각이 다르면 '친구'라고 생각하지 않으니까요.
아- 어쩌면 저는 친구라는 걸 너무 무겁게 생각하고 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아니, 사실 어느 정도의 정답은 알고 있습니다.
떠나갈 인연은 떠나가게 두면 되는 것입니다.
살아가는 건 여행과도 같고, 여행길에는 만남과 헤어짐이 반복되니까요.
그렇지만 저는 헤어짐이 참 슬픕니다.
정들었던 친구, 이야기를 들어주고 또 저의 이야기를 털어놓았던 친구, 마음이 잘 맞았던 친구.
아 혹시, 제가 가깝지 않다고 생각했던 이들이 저를 가깝게 여겼던 것처럼
저도 그들과 같은 입장인 걸까요.
저는 친구였지만, 그들에게 저는 친구가 아니었던 걸지도 모르겠습니다.
서로에게 친구의 기준이 너무나도 달랐던 걸지도 모르겠습니다.
아, 어쩌면 저는 친구라는 걸 너무 가볍게 생각하고 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잘 모르겠습니다. 아직 한참을 모르겠습니다.
태어나고 27년 가까운 세월이 흘렀지만
아직도 친구가 뭔지 조금도 알지를 못합니다.
이제 친구라는 단어를 쉽게 꺼낼 수 없게 되었습니다.
어머니에게는 친구가 어떤 존재였을까요.
어머니, 회사에서는 친구를 더 이상 만들지 않으려고 합니다.
여기 회사 사람들은 욕심이 너무나도 많습니다.
욕심이 많다 못해 이익을 더 챙기려고 직원들끼리 편을 나눠 싸우기까지 합니다.
조롱하고 협박하고 상황이 자기 마음대로 움직이지 않는다며 분노합니다.
끊임없이 "자신의 단면적 가치"와 "타인의 단면적 가치"를 비교합니다.
조금이라도 불편함이 느껴지면 스스로 바뀌기보다는 주변이 바뀌어주길 바랍니다.
이들에게 '사우'라는 단어는 어울리지 않는 듯합니다.
돈으로 뭉쳐진 집단에서 친구란 존재하지 않는 것 같습니다.
아, 돈에 미친 사람들끼리 모인다면 서로 친구가 될 수도 있겠지요.
그렇게 맺어진 친구관계가 얼마나 길게 갈진 모르겠지만요.
하긴, 좋은 친구관계란 "길게 유지되는 친구관계"만을 나타내는 건 아니니까요, 저들 마음대로 하라죠.
어머니.
이런 생각을 꺼낼 곳이 여기밖에 없습니다.
이런 생각을 누군가에게 꺼내면, 뭐 그리 복잡한 생각을 하냐면서
어렵게 생각하지 말고 간단하게 생각하라고 합니다.
혹은 농담으로 주제를 벗어나버리고 맙니다.
농담도 좋고 간단한 삶도 좋고 다 좋습니다.
그런데 이런 궁금증이 계속하여 드는데 이를 어쩌면 좋습니까.
걸어가는 사람 붙잡고 "친구가 뭐란 말입니까" 물어볼 수도 없지 않습니까.
어머니.
글을 쓰고 생각을 정리하면서
긴 생각의 끝에서 제가 내린 결론은 "친구란 존재하지 않는다"입니다.
결국 '친구'라는 단어도 부처님의 말씀처럼 텅 비어있는 '공(空)'이었습니다.
그 무엇도 친구가 될 수 있고, 그 무엇도 친구가 될 수 없는 것이었습니다.
저는 이제 친구라는 단어를 입 밖으로 꺼낼 수 없을 것 같습니다.
어제는 남이었던 어떤 이가 오늘은 친구가 되고
어제는 친구였던 이가 오늘부터 남이 되어버리고
친구인 듯 연인인 듯, 친구인 듯 형제인 듯,
친구인 듯 부모인 듯, 친구인 듯 친구가 아닌 듯.
그렇구나- 친구란 건 결국 우리가 만들어 낸 단어,
속이 빈 조개껍데기, 열매가 빠져버린 솔방울,
한 쪽을 잃어버린 겨울 장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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