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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의 창작/어머니의 가족

조상님들께 천년 띠집 지어 드리던 날 (2012.08.26.)

by Yujin Choi 2024. 12. 14.


 조상님들께 천년 띠집 지어 드리던 날
2012 임진년 윤3월

 

어머니는 여섯살 아들의 손을 잡고 이웃 친척집으로 갔다

보리쌀 한됫박을 들고 오랜만에 절에서 내려온 큰아들과 함께

이웃 친척집에 먼 친척인 무속인이 와 있다 하여 간 것이다

이것 저것 궁금한 것이 있어 물어 보는 어머니를 보고

그 무속인이 하는 말

아지매는 그냥 가만히 계시이소

그러면 그 옆에 앉아서 눈동자 까맣게 반짝거리는

지금은 어린 저 선생이 나중에 가면 다 알아서 할 것이오

두고 보시오

저 선생이 천하를 호령 할 것이오

 

 50년의 세월이 흐르고...

 그 동안에

 아버지가 암으로 돌아 가시고 모신

아버지 산소가 잘못 되었다고 어머니께 말씀 드리니

나중에 네가 다시 알아서 하라 고 하시던 어머니

네 아버지가 나를 언제 데려 갈거나?

2년뒤면 심심타고 데려 갈 것이오

라는 큰아들의 말을 듣고

2년 후 어머니는 산천경계 벗을 삼아

 아버지 산소 옆에 나란히 누우셨다

할아버지 할머니 산소 우측이었다

 아버지 산소를 모신 후 3개월이 지나면서 집안에는

좋지 않은 일들이 일어나기 시작했다

남동생 부부는 어린 두 조카를 두고 이혼을 했고

노름빚 수 천만원에 정신도 못 차리고

어머니는 암으로 병원 생활로 힘드셨던 것이다

어린조카들 거두면서 어머니 병수발에 동생 노름빚 해결에

도저히 이래서는 안되겠다 싶어 산소를 이장키로 결심하고

부모님 산소에 물이 드니 옮겨야겠다는 말에

그 높은 산에 무슨 물이며

 형제간에 우애 좋고 집안이 다 좋아진다는 좋은 터 라는데

산소 옮긴다고 노름하던 애가 정상으로 돌아오겠냐고요

두고 보시오 옮기고 나면 어떻게 변하는지...

 부모님 산소를 파묘하자 모두들 깜짝 놀랄 수 밖에...

6년이 지난 두분의 영정이 그대로인 것이었다 

오히려 물길에 두분의 관이 서로 통해져 있는 것이었다

대사님은 깊은 땅 속의 물 흐름 소리를 다 듣고 계셨다 한다

 부모님을 다시 조부모님 산소 좌측으로 옮겨 모시려 하니 

모두들 대체 뭘보고 여기다가 사소를 쓰느냐고 의아해 하는데

옮겨 모신 후 산소 앞에 나무숲을 없애고 나니

모두가 명당이라며 무릎을 치고 탄복을 하는 것이었다

사람들은 앞이 가리워져 있으면 내다 볼 줄을 모르고

땅 속을 들여다 보거나 물소리도 듣지 못한다

우리네 보통 평범한 사람들의 눈과 귀가 밝지 못하기 때문인 것이다

도를 많이 닦은 대사는 눈 귀가 맑고 밝아서

보고 들을 수 있는 것이다

 앞으로 3년만 기다려 보시오...3년이 지나자

노름빚도 다 해결이 되고 정신 차린 동생은 새로운

기술을 배워서 밤낮으로 열심히 익히더니 지금은

모회사의 부장님이 되셨고 아들 며느리 손자 손녀에

안정된 집안을 갖춘 것이다

 사람들은 살아 가면서

산소와 집 집터의 영향을 무척 많이 받고 있지만

현실에 당하고 있으면서도 무시하고 모른채 아픔을 겪는 것이다

이유 없는 결과는 없다는 걸 다 아는 현대인들의 깊은

학식 갖춤에도 나름 부족한 면이 또 있는가 보다

 3년전 윤달에는 산소에 풀도 나지 않고 그늘진 곳에서

보살피는 후손 없는 듯한 증조부님 산소를 이장해서 모셔와

 후손 이어주신 작은증조모님과 합장해서 모셨다

 그 후 대사님은 3년 동안 도 닦으시면서

낮에는 공부하시고 밤이면 고물일 하시어 적금으로 모으신

돈으로 이번 윤달에 또 조상님들 산소 이장해 드리는 것이다

이산 저산 여기 저기 계시니 후손들 벌초다니기 어려워

묵묘되면 안되겠기에 미리 한 곳으로 다 모셔 오는 것이다

후사를 잇지 못하신 큰고조모님과

15세에 시집오시다가 가마 안에서 돌아가신 큰 증조모님은

파묘후 모셔 오지 않고 화장해서 그 곳 주위에서

산골 해 드리기로 한 것이다

 

2012.5.13

임진년 윤3월 23일

  토요일 밤 늦게까지 박스시주 다니시며 힘들게 일하시고

일요일 새벽 2시에 서울출발 군위로 향하셨다

아침 일찍 도착 바쁜 하루일이 시작되었다

 포크레인이 올라 가고

잔디도 올라 가고

산소 일 해 주실 분들도 모셔 오고

상석 망두도 올라 가고

서울에서 준비 다 해 왔으나 그래도 군위장에서

더 준비해야 할 것들이 있고...

 산소 올라 가는 길에

하얀 산딸기 꽃이 만발해 있었다

 

여기도 저기도 숲속에도 비탈에도 

산소 올라가는 길 양옆에도 온통 하얀 산딸기 꽃들이

하얗게 하얗게 만발해 있었다

산초도 가죽나무 죽순도 활짝 피어 있었다

일주일 후면 하얀 찔레꽃들이 또 만발할 것이다  

 

산소 주위로 온통 망초대가 구름처럼 몰려 피는 아름다운 곳이다

포크레인이 

고조부모님 모실 곳으로 올라가 작업을 시작했다

 

대사님 말씀이 내려지고 모두 바쁘게 움직인다

 

부적으로 천지기운을 안정시키고

터를 고르고 주위를 정리하고 넓히고 대사님 지시 하시는 곳을

땅을 파니 누런 황토 흙이 나온다

고조부 고조모 두분 자리가 다 좋다고 하시니 다행이다

 

 그 동안에 작은 고조모님께서 먼저 오고 계셨다

작은 고조모님 산소로 간 인부들이 먼저 파묘를 하니

순조 병자생의 병인년( 136년전) 산소인데도

유골이 그대로 남아 계셔서

다시 칠성판에 모시고 일곱 마디 묶음으로 잘 여며서

인부의 지게에 업히셔서 하얀 산딸기꽃 활짝핀 길로

걸음 걸음 올라 오고 계셨다

 어서 오시어요 고조모님

고손자 석천대사님이 편하고 좋으신 곳으로

새로 모셔 드리는 거랍니다

 먼저오셨지만

아직 고조부님께서 도착하지 않으셔서

지게에 모셔진채  편히 내려 모시지 못하고 그대로 지게에서

고조부님 오시길 기다리고 계셔야 했다

순조 병자년에 태어나시어 일생을 사시고

 병인년에 무덤 속으로 들어 가셨다가

 백골이 되시어 지금 다시 나오셔서 칠성판 의지하여

인부의 지게등에 업히셔서

향기로운 산딸기 언덕길 올라와

사랑하는 님을 기다리고 계시는 고조할머니

부부의 연이란게 이런 것인가 보다

오랜 세월이 지나도 백골이 진토가 되어도

 함께 엮이어 있을 수 밖에 없는 운명

시집가면 그집 귀신이 되어야 하는 여자로서의 운명이란게

이런것인가 보다

134년전에 돌아가신 순조 무인생 고조부님꺼서도

칠성판 의지하여 인부의 등에 업히셔서 산고개를 넘어 도착하시고

두분을 합장으로 모시는데 그 방법이 처음 돌아가셔서

장례모실 때의 합장방법과 이장해서 다시 합장해서 모실 때의 법이

다른 것이다 그리고 부인이 둘 일 때의 세분 산소 쓰는 법과

둘째 부인을 집으로 들이진 않았으나 있었을 경우

심하게 바람을 피웠거나 다른 여자가 있었을 경우에

산소 합장하는 법이 다른 것이다

살아계셨을 때의 마음씀을 돌아가신 후에도 후손들이 짐작해서

헤아려 드리는 세밀함인데 이런데서 간과하고 무심히 지나가 버리면

돌아가신 분들의 불편한 관계에서 오는 장애의 영향이

그대로 후손에게 전해지는 것이다

조상님들이 의지할 곳은 후손들 뿐이기 때문인것이다

자식이 힘들땐 그 부모만을 의지하듯

아무도 알 수 없는 무덤 속에서 물이 차고 나무 뿌리가 휘감겨 오고

돌멩이나 바윗돌이 괴롭히고 살아서 극심히 앓았던 병들로 계속 고통받고

후손이 정해준 땅속 천년집이 이미 성별이 다른 넘귀신의 집이어서

들어 갈 수가 없어서 고통이고...등등

살아서 도를 닦지 못했거나 수행력이 높지 못하면

육신에 대한 집착을 버리지 못했기에 죽어서도

그 고통과 환영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그 불편함을 어떻게든지

후손에게 알려서 벗어나려고 하게 되는 것이다

우리는 삼혼 육백이라고 말한다

정기신이니 마음이니 육근 육식 의식등...

살아서는 육신을 의지하여 이것 저것 모두 모여 합해져 뭉쳐 있다가

육신집이 힘이없어 망가지고 허물어지게 되면

이것 저것 너도나도 모두 쓸모없는 집을 버리고 떠나게 되는 것이다

이때 하늘로 올라가는 이도 있고 다시 환생하는 이도 있고

머물러서 천년띠집을 지키는 이도 있는 것이다

나라고 하는것이 하나가 아니기에

향을 피워 올려서 혼을 청해 내리고

맑은 차나 향기로운 술로 넋을 불러 올린다고 한다

 

고조부모님 합장해드린  산소에 푸른잔디 입혀 드리고 상석놓고

양쪽 옆으로 망두 세워 드렸다

증조부님 산소에도 새로 봉분해서 잔디 올려 드리고 증조모님 산소와 함께

합장상석과 망두 세워 드리고

어머님산소 쪽에 망두 세우고

 아버님산소쪽 망두 세워 드리고 두분 합장상석 놓아 드리고

 

  할아버지 할머니산소 합장상석 놓는 작업 시작이다

 

이곳에서의 일은 모두 끝나고 분향 다과 올리는 일만 남았다

대사님은 또

큰고조모님과 큰증조모님 산소로 인부들과 함께 가셔서 파묘하시고

고인들의 유골을 습골 하셔서 화장하시고 산골 해 드리셔야 한다

 

 

각 산소마다 분향례를 올리고 앉아 있으려니

아주 잠간 사이에 살짝 색다른 향기가 스쳐 지나간다

음~ 지금 화장하고 계시는구나

산에서의 화장은 이런 향기가 나는구나 

먼 거리인데도 자연히 알려져 온다

큰증조모님께선

열일곱살에 가마타고 시집오시던 길에서 급하게 돌아가셔서

산 계곡길 옆 언덕위에 산소를 해 드렸는데 파묘하니

유골전체에 나무뿌리가 감겨있고 습하고

두골로 해서  눈구멍으로 콧구멍으로 귓구멍으로

나무 뿌리가 구멍마다 파고 들어가 휘감겨 있는것을 

증손자 석천대사님이 하나하나 모두 다 제거하고

깨끗이 해서 화장해 드린 것이다

1903년(109년전)에 돌아가시어 그 동안에

무덤안에서 겪으셨을 고통들 얼마나 심하셨을까?

109년이 지난 지금에사 고손자 석천대사로 인해

그 고통들 헤아려 시원하게 다 해결해 드리니

이런 기막히게 고마울 인연이 어찌 쉬우리요?

참으로 인연이란 묘한 것이다

  

 

후손 없으신 큰고조모님과 큰증조모님은

파묘하신 곳에서 화장하여 그 곳 주위로 산골 해드렸다

작은할머님들과 할아버님들을 합장 해드린 곳으로

큰 할머님들께서 오시게 되면 또 다시 후손들에게 일어날

분란들을 지금 아예 싹을 없애고 큰할머님들께서 마음 편안히

 미련없이 자유로이 계시도록 해 드리는 것이다

일이 모두 끝나고 산속 어둠이 짙어지기 전에

마을로 내려왔다

밤10시가 되어서 군위에서 출발

다음날 새벽3시쯤에 서울도착했다

 

일주일 후

2012.5.20

조상님들께 새집 지어 드렸으니 환영입주식 해 드리러 갔다

 

정성껏 준비한 부적을 제각각 잘 찾아서

대사님 법력과 도력의 맑고 청정한 기운으로 더하여

조상님들을 편안하게 해드리려는 것이다

 

 

 

  부적의 힘으로 지신 산신 풍신 오방내외 제신들이 편안키를 원하며

 대사님이 부적을 묻어 또 한번 기운을 평정시켜 편안케 해드리고

후손들에게 장애없고 무탈키를 바라는 한씨네 집안의 31대 장손으로서

조상님들께 후손이 해야할 책임을 다하시는 것이다

 

 

새로 모신 산소에 멧돼지가 해를 끼칠까 염려하신 숙부님께서

그물망을 씌워 놓으셨다 3년전 윤달에 이장해 모신 증조부님 산소를

산멧되지가 여러차례 파서 고생시켰기 때문이다

봉분 3분의 일만 남기고 다 파헤쳐 버리는 것이었다

동네 농사도 다 망쳐서 멧돼지 43마리나 잡았다 한다

대사님은 말씀하신다

증조부님은 욕심이 많으신 분이라고 하신다

93세까지 수명을 누리신 분이시다

해서 먼저번 봉분이 맘에 들지 않아서

새로 해드릴 때마다 휘저어 버리시고

이렇게 하고 있으면 증손자가 보고 잘 해주겠지 생각하시고

지금껏 기다려서 새로 잘 해주길 원하신거라

제일 높게 크게 만들어서 푸른 잔디도 제일 많이 올려드린 거라고 하신다

봉분위의 그물망을 터야 한다고 하신다

저리두면 혼신들의 출입 왕래가 어려워 

 바로 후손에게 장애가 나타난다고 하신다

 

 

 향 과일 올리오니 흠향하시고

고손자 석천대사님 법화독경 염불 들으시고

 극락왕생 하시옵소서

4대를 편안하시고 좋은 발복터에 차례대로 모셨으니 화락하시고

평화로운 명복 길이길이 누리소서

 

 

원산 근산 동서남북 이 산에 머무르는

일체신과 귀신들 혼령들이시여

이 인연으로 모두 모여 오시어

다겁생에 만나기 어려운

 법화대사님 법화독경 들으시고  

해탈하소서

 

가을 처서 지나고 추석 전

벌초때

다시 와서 인사 올리겠습니다

 

 

2012.8.26

묘법연화사

청주한씨 문경공파 31세대장손

석천 관음

조상님들께 부족한 예를 다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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