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Diary/2024년

반말

by EugeneChoi 2024. 11. 19.

  유진아 나 재태형인데.

  아무 소리도 내지 않았다. 내가 아는 그 사람이 맞는지 아니면 단지 동명이인의 다른 사람인지,
짧은 순간 수화기 너머로 들린 그 목소리의 주인을 기억해 내려 애쓰고 있었다.

  내가 그 사람을 알았던가. 한 번이라도 우리가 얼굴을 마주보고 대화를 나눈 적이 있었던가.
그는 어떤 마음으로 내게 반말을 던졌을까. 당신과 내가 조금의 친분이라도 있다고 느낀 걸까.
혹은 단지 나이가 많이 차이난다는 이유로 관계의 우위를 점하려고 한 것일까.
그러기엔 그의 목소리는 작고 부드러웠다. 그 목소리가 마치 그는 무해하다고, 내게 속삭이는 듯했다. 

  여보세요? 유진아 나 재태형인데.
  네.
  오늘 너가 조강을 가는 날이더라고. 근데 스윙이잖아.

  그런 곳 따위는 가고 싶지 않다. 수많은 회사사람들로 둘러싸인, 그 사이로 서빙되는 살아있는 고기들.
잘게 도륙되어진 그 고기들의 생전을 이따금씩 생각한다. 생각들이 폭풍처럼 빠르게 나를 스쳐 지나간다.
결국엔, 이 모든 것들이 아무 의미 없다는 결론이 날 것이라는 것을 안다. 그러기에 조용히 생각을 멈춘다.
고기를 불판 위에 올려둔다. 자글자글 까맣게 타들어가는 근육 덩어리를 집어 입 안으로 넣는다.
사람들은 웃는다. 핏기가 아직 남아있는 그 고기들 앞에서 사람들은 떠들며 웃는다. 
걷다가 주운 평범한 돌멩이처럼, 한 발자국도 움직이지 못하는 돌멩이 앞에서 마치 우월한 강자라도 된 것처럼.
돌이킬 수 없을 정도로 지구를 파괴시키는 인간들이, 그들이 짧은 미래는 생각지도 못한 채 무엇을 축하한다.
실적을 축하하고 그동안의 수고스러움을 축하한다. 지구의 숨통을 조이는, 인간의 숨통을 조이는 행위들을 축하한다.
보고 있자면 실웃음이 난다. 저들은 아무것도 모른다고 생각한다. 그저 세상이 시키는 대로 살아갈 뿐이다.

*

  괜찮습니다. 가지 않아도 괜찮아요.

  가고 싶지 않았다. 일부러 아쉬운 척, 괜찮다는 티를 냈지만,내 목소리는 오히려 조강을 참석하지 않는 것이 즐겁다는 티를 냈다. 그는 알아차렸을까. 나처럼 부드러운 목소리를 가진 그도, 미세한 사람들의 목소리의 변화를 알아챌까.
아무렴 상관없다. 오늘의 그와 나의 첫 대화였다. 그는 나를 알지 못한다. 앞으로도 알지 못할 것이다.
그러니 그가 나에 대해 어떻게 생각해도 상관없다. 그것은 사실이 아닐 것이고 내 귀로도 들어오지 않을 것이다.

 

 

'Diary > 2024년' 카테고리의 다른 글

요즈음  (0) 2024.12.20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