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iary/2025년

몸살감기

EugeneChoi 2025. 4. 22. 00:25

#몸살

온몸이 근육통으로 아프다.
기침도 나오고 목도 아프다.
열도 나고 두통도 생겼다.
어디에서 온 바이러스일까.
내일은 연차를 쓰고 쉴까- 생각하는 중이다.

배가 고프다.
하지만 아무것도 먹고 싶지 않다.
그냥. 그냥 그렇다.

 

#사랑

사랑 참 어렵다.
있는 그대로 바라보면 괜찮을 텐데.

너는 나와 다르구나, 나 또한 너와 다르구나.
그렇게 받아들이면 좋을 텐데.
나는 그게 쉽지만, 많은 이들은 그게 어려운 것 같다.

내가 사람에게 기대가 없어서 그런 걸까.
사랑을 받고 싶다는 기대.
나에게 무언가를 해주길 바라는 기대.
내가 이만큼 사랑하니까, 너도 이만큼 해주길 바라는 기대.
내가 그런 기대가 없기 때문일까.

연인과 부부, 친구는 그 단어 자체로 약속이라고 생각했다.
신뢰는 그런 약속에서 오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 신뢰를 굳건히 믿고 상대를 받아들이는 일, 그것이 하나의 사랑이라고 생각했는데.
많은 사람들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 것 같다.

"나를 이해해주었을 때, 그때 가장 큰 사랑을 느껴.
내가 먹고 싶은 음식을 함께 먹어주는 그런 이해가 아니라,
누군가 다른 사람과는 다른 흔치 않은 특징을 가질 때,
그것을 받아들이고 이해해 주는 거."


실제로 나는 그랬다.

나를 생각하며 산 선물보다, 애정 가득한 문자보다
사랑한다는 말 한 마디보다, 안아주는 행위 한 번보다
나를 이해해주는 것에서 사랑을 크게 느꼈다.
정말 내가 돌연변이라서 그런 걸지도 모르겠다.

나에게 사랑은, 에로스나 마니아가 아닌
아가페, 제니아, 필리아에 더 가까운 것 같다.
아니, 어쩌면 나에게는 에로스나 마니아가 없는 것일 수도 있겠다.

한 친구는 "사랑은 져주는 것"이라고 내게 말했다.
져주는 것이라. 그럴 수도 있겠다.

한 친구는 또 내게 "네가 여자였으면 좋았을 텐데" 라고 말했다.
내가 여자였으면 본인이 나랑 사귀었다는 그런 말이었다.
걱정은 안 해도 된다. 그 친구는 게이가 아니다.
단지 친한 친구여서 그런 말까지 나온 것이다. 
(근데 난 그 친구를 만나겠다고 한 적 없는데.)

 

#데려다주는 마음

누군가를 집까지 데려다주는 것. 그것을 배웅이라고 한다.
한국엔 남자들이 여자친구를 집까지 배웅해 주는 문화가 있다.
몇이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꽤 많은 남자들이 그런 배웅을 하는 것 같다.

나조차도 확신을 할 수 없어서 인터넷에 검색을 해보았다.
예상외로 적지 않은 남자들이 이를 귀찮아하고 비효율적이라고 느낀다는 것을,
그리고 많은 여자들이 그것에 서운함을 느낀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물론 나의 연애를 그들의 연애와 비교하려는 것은 아니다.
단지, 이것이 마음의 문제인지 아닌지 나 스스로 알아보고 싶을 뿐이었다.

한 친구는 내게 말했다.

"남자는 항상 미안해하고, 여자는 항상 서럽다더라."

마음이라. 마음의 문제라.
내가 정말 좋아하지 않는 걸까. 마음이 그 정도밖에 되지 않았던 걸까.
그렇다면... 그동안에 내가 수차례 배웅해 준 것은 내 진심이 아니었던 걸까.
아니었다. 귀찮지 않았고 힘들지 않았다.
같이 있으면 좋고 재미있었다.
단지, 그것이 반복될수록 배웅이라는 것이 매우 비효율적이라는 것을 느꼈을 뿐이다.

내 마음은 일정했다.
처음 만났을 때부터 지금까지 일정했다.
마음이 급격하게 커지지도, 칼로 베어버린 듯 두 동강 나버리지도 않았다.
그녀가 설레도록 이벤트를 준비하지도 않았다.
너무 우울에 빠지지 않도록 잡아주기도 했다.

나는 안정적이었다. 나는 그때부터 지금까지 그대로였다.
나는 스스로가 언제나 그런 사람이길 원했다.

그 무엇에도 쉽게 동요되지 않는 고요한 호수와도 같은 그런 사람.

잘 모르겠다.
나는 내가 애써 그녀를 만나주었다고 생각하지도 않는다.
마음에 없는 상대에게 시간을 쓰지 않는 사람이다.
그냥 나는 좀 다른 사람이었을 뿐인데.

어쩌면 내가 이기적인 걸까.
하지만 모든 사람들은 전부 이기적인데.
모두 필요로 의해서 관계가 맺어지는 것인데.
다만, 내가 좀 지나쳤던 것일까.

한 여자 회사 동료는 내게 말했다.
"여자의 마음도 이해가 되네. 근데 나는 개인적으로 데려다주는 건 싫어.
데리러 가는 건 좋은데. 만나러 가는 거잖아.
근데 헤어질 때 대중교통으로 데려다준다고?
만약 내 남자친구가 그런다면 나는 부담스러울 것 같아.
시간도 아까운데 오히려 하지 말라고 할 듯.
아, 나라면 그냥 자고 갈 것 같은데?"


...내 주변에는 거의 나와 친한 사람뿐들이어서 그런 걸까.

다른 회사 동료는 내게 이렇게 말했다.
"음... 나 같으면 서운할 듯."

사람마다 참 성격과 사정이 다르다는 것을 느꼈다.

그래.
우리는 그냥 다른 거겠지.

누가 나쁘고 착하고, 서로를 덜 생각하고 더 생각하고가 아닌,
그냥 우린 사랑하는 방식이 다른 거겠지.
그리고 서로의 방식을 이해하기 어려운 거겠지.
그냥.
그냥 그런 생각이 든다.

 

#자신

친한 친구에게도 이야기를 해보았다.
친구는 말했다.
이미 이전에 여러 번 데려다준 것에서 너의 마음이 표현된 것 아니냐고.
그것이 결코 작아지거나 사라질 순 없는 것이라고.

나는 그렇게 생각한 적이 없었지만, 그렇게도 볼 수 있었다.

마음이 없는 상대였다면 바로 집으로 보내지 않았을까.
아니, 애초에 사귀지도 않지 않았을까.

이런 생각을 많이 했다.

그녀가 자취를 했더라면 내가 많이 찾아갔을 텐데.
내가 차가 있더라면 그녀를 매일 배웅해줬을 텐데.
그녀가 외박을 할 수 있었다면 집으로 가지 말라고 붙잡았을 텐데.
내가 기독교인이었다면 이 모든 것들을 이해할 수 있었을 텐데.


나는 스님의 아들이었다. 볍화경을 읽고 부처님, 스님께 절을 하며 자라왔다.
또 위와 같은 가상의 시나리오조차도 내가 바라는 것이 될 것이기에

말을 많이 아꼈었다.
그녀의 기독교를 이해하려 노력했다.
그녀도 그녀만의 사정이 있겠지- 하며 그저 받아들이려 노력했다.



그녀에게 미안하다.
점점 자신이 사라져 간다.
그녀가 아프지 않았으면 좋겠는데
나랑 함께해서 더 아픈 듯하다.
그녀를 웃게 해 줄 자신이 점점 사라져 간다.

잃고 싶지 않았는데.
또 잃어버리게 될까.
혹시나 내가 그녀를 당연하게 생각한 것일까.
내가 아니라고 하더라도, 내 행동과 말이 그랬던 것일까.
어쩌면 나도 아빠처럼 스님을 만나야 하는 걸까.
마음공부를 많이 한 스님 같은 사람.
엄마처럼 광활한 마음을 가진 스님 같은 사람.

아니다.
엄마도 '여자는 남편에게 사랑받아야 행복하다'라고 말했었다.
그 사랑이 어떤 표현인지, 어떤 방식인지는 잘 모르겠다.
점점, 더욱더 사랑에 대한 욕심이 사라진다.

나는 그냥 혼자 사는 것이 옳은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