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ugeneChoi 2025. 1. 31. 06:42

  어머니가 나의 뒷머리카락을 움켜잡았다. 그리고는 차가운 물로 가득 채워진 새빨간 고무다라이 속으로 내 머리통을 푹 담근다. 머리를 따라 목과 어깨와 팔도 물속으로 빨려 들어간다. 이전에 뺨을 맞고 울던 나는 호흡이 가빴었기에 물속에서 숨을 참을 수 없었다. 폐 속에 남아있던 모든 공기가 빠져나간다. 혼자서 얼굴을 세숫대야 물에 담그며 잠수놀이를 할 때는 잘만 들리던 보글보글 공기방울 소리가 어째서인지 지금은 들리지 않는다. 더 이상 숨을 내뱉을 수 없어 물속에서 크게 숨을 들이쉰다. 하지만 공기는 들어오지 않는다. 코와 입으로 차가운 수돗물만 잇따라 들어올 뿐이다. 아무리 팔다리를 움직이며 버둥대도 내 다리보다 긴 고무다라이 아래 땅바닥으로 발을 디딜 수 없다. 머리에 힘을 주어 물밖으로 나가려고 해도 여섯 난 나는 어머니의 힘을 이길 수가 없었다. 마침내 물 밖으로 머리가 나왔을 때는 나도 모르는 새 입 밖으로 잘못했다는 말이 반복되고 있었다. 
  
  엄마 잘못했어. 미안해. 다신 안 그럴게. 엄마 미...

  말이 끝나기 전에 날카롭게 뺨을 갈기는 소리와 함께 너의 고개가 오른쪽으로 돌아간다. 뺨 맞은 왼쪽 얼굴에 손바닥을 가져다 댄다. 고개가 돌아간 채로, 손바닥이 얼굴에 맞닿은 채로 일절 움직이지 않는다. 우리 형제들은 그렇게 교육받았다. 맞고 있을 때는 움직이지 말라고 교육받았다. 그렇게 얼어붙은 채로 가쁘게 숨을 고른다. 나머지 한 손은 내 머리카락을 움켜잡은 어머니의 팔을 붙들고 떨고 있었다. 어머니의 눈을 흘겨보았다. 어머니는 무서운 눈빛으로 나를 노려보고 있었다. 살고 싶었다. 숨을 쉬고 싶었다. 도망가서 숨고 싶었다. 겁에 질린 얼굴로 내 눈꺼풀은 떨렸다.

  이 썅놈의 새끼야. 왜 엄마 말을 안 듣냐. 또 물벼락 맞고 싶냐.

  짧은 욕을 담은 몇마디 말이 끝나기 무섭게 어머니의 오른손이 날아오기 시작했다. 또다시 왼쪽 볼이 아팠다. 울음이 멈추지 않았다. 어머니는 다시 내 머리를 고무다라이 속으로 다시 푹 집어넣는다. 다시 어깨와 팔이 물속으로 들어간다. 어머니 말을 더 잘 들었어야 했다. 앞으로 몇 번 정도 더 저 고무통에 들어가야 끝이 날까. 첨벙첨벙 소리를 내는 내 뒤에서 청명이가 차렷 자세로 서서 조용히 울고 있다. 내 차례가 끝나면 동생 차례일 텐데. 차라리 내가 더 오래 괴로운 게 나을까. 왜 나는 어머니보다 힘이 약할까. 조금 더 크면 어머니보다 힘이 세질 수 있을까. 그럼 더 이상 내 가슴높이의 차가운 수돗물로 가득한 빨간 고무다라이 속으로 더 들어가지 않을 수 있을까. 제발,
부디 오늘의 물벼락이 금방 끝나기를... 
  어머니가 우리를 아프게 한 이유는 아버지 때문이었을까. 어머니가 그렇게 하지 않으면 아버지에게 맞았기 때문이었을까. 이상하게도 아버지는 그런 어머니를 뒤에서 빤히 지켜보기만 했다. 때로는 작은 방 안에서 안경을 쓴 채로 라디오나 전자부품을 수리하기도 했다. 나는 어머니를 원망했다. 나에게 고통을 주는 어머니를 미워했다. 내 뺨을 때리고 머리카락을 잡아 물속으로 머리통을 집어넣었던 어머니가 참 무서웠다.
  어머니가 부엌에서 수도꼭지를 확 틀어 호스에서 물이 쏟아질 때, 투타타탁 떨어지는 수돗물이 빨간 고무다라이에 부딪히는 물소리를 기억한다. 그 둔탁한 물소리가 콸콸콸- 쏴아- 소리로 바뀌어 방 안으로 새어 들어올 때면 우리 삼 형제는 물벼락을 짐작했다. 그럴 때마다 서로를 바라보며 울기 시작했다. 도망칠 데가 없어 방구석으로 가 최대한 몸을 웅크렸다. 한 명씩 팔을 잡혀 어머니에게 부엌으로 끌려가는 모습이 너무나도 두려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