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네한테 물린 날]
산이 초록빛이던 여섯 살의 어느 초여름 날이었어. 엄마와 함께 집 뒤편에 있는 감자 화분을 정리하고 있었어. 옆에는 실외기가 있었는데, 10만 원짜리 에어컨이 뭐 저리 시끄럽게 쌩쌩 돌아가는지. 아니, 저렴한 싸구려라서 저렇게 소리가 컸던 걸까. 뜨거운 실외기 바람을 피해 쪼그려 앉아 쇠숟가락으로 화분을 쏘삭거렸어. 화분 속에서 콩벌레도 나오고 개미도 나왔어. 난 곤충을 손으로 가지고 놀 정도로 좋아해서 무섭지 않았지만, 엄마가 비닐장갑을 끼고 하라고 해서 마지못해 끼고 흙을 정리하고 있었어.
난 맨손이 편한데. 비닐장갑 답답한데. 속으로 생각하면서 흙을 퍼내는데 지네가 나오더라. 까맣고 길다란 몸에 수십 쌍의 빨간 다리를 가진 지네. 그림책에서만 보던 지네를 실제로 본 나는 그게 참 신기했어. 손으로 재빨리 지네를 움켜잡아 못 도망가게 했어. 지네가 독이 있는 건 알았지만 어떻게 공격하는지는 한 번도 본 적이 없었기에 겁이 없었어. 얼마나 아플지도 몰랐으니깐. 그 순간 아주 잠깐 동안 손가락이 따끔! 하더니만 벌에 쏘인 듯 아파왔어. 어떤 손가락이었더라, 아마 검지였지.
엄마는 바로 아빠한테 말을 했고 아빠는 나를 방 안으로 불렀어. 아빠는 방 안에서 옹을 하고 있었어. 여기 앉아라. 내가 아빠 앞에 가서 앉자 아빠는 옹을 내려두고는 핏망울이 맺힌 내 손가락을 유심히 살폈어. 지네 독 때문이었을까, 손가락은 서서히 붓고 단단해지기 시작했어. 아빠는 그것을 보고도 대수롭지 않다는 듯, 지네에 물린 내 검지손가락을 끝쪽으로 쓸어내린 후 어디선가 실을 가져와 피가 통하지 않도록 단단히 묶었어. 그리고는 마저 옹을 하기 시작했고 나는 정좌자세로 아빠 앞에 앉아 아빠 옹이 끝나기만을 기다렸어.
십 분 쯤 흘렀을까, 아빠는 자리에서 일어나 부엌으로 나갔어. 잠시 뒤에 아빠는 락스 한 병을 손에 들고 내 앞에 다시 와서 앉았어. 아빠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어. 그저 락스 뚜껑을 따고 작은 락스 뚜껑에다가 락스를 붓고는 실로 휘감아진 내 작은 검지손가락을 그 락스에 푹 담갔어. 지네의 독니가 뚫어 놓은 작은 구멍 속으로 락스가 스며들어 손가락이 따가웠어. 십 분 정도 후에 손가락을 락스에서 빼내고 실도 풀었어. 나에게 락스를 부엌으로 다시 가져다 놓으라고 말한 뒤, 아빠는 할 일을 하기 시작했어. 신기하게도 그 후 더 이상 손가락이 붓거나 단단해지지 않았어. 따가움도 사라졌어.
어머니가 그러시더라, 독은 독으로 빼는 거라고. 하지만 나는 가끔 생각해. 과연 이게 맞는 응급처치였을까. 어찌됐든 지금은 아무렇지도 않아. 당연하게도 22년 전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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