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 속의 아버지]
집에 창문을 만들고 얼마 되지 않았던 봄날이었다. 유난히 그날따라 창에서 햇살이 밝게 들어왔다.
툭. 툭.
일어나.
자다 말고 엄마가 삼 형제를 조용히 깨웠다. 엄마가 정확히 무슨 말을 했는지는 기억이 나질 않는다. 다만 집을 떠날 거라는 것을 나는 엄마의 복장을 통해 눈치챘다. 아버지가 잠에서 깨지 않도록 조심조심 옷을 주워 입고 나갈 준비를 마쳤다. 엄마가 문 밖으로 나가고 형도 문 밖으로 나갔다. 집 안에 아빠만 남겨두고 내가 부엌문을 나서는 순간 누군가 내 팔을 잡았다. 화가 나지 않은 표정의 아빠였다. 아빠는 무슨 말을 중얼거리면서 내가 못 나가도록 팔목을 강하게 붙들었다. 다섯 살짜리 애가 무슨 힘이 있다고.
나는 울면서 집으로 들어왔고 아빠는 나에게 사탕을 쥐어줬다.
옛날에 많이 먹었던 옥춘당. 그 때, 울면서도 이 사탕을 그렇게 많이 먹었다. 단 것을 절대 먹이지 않았던 아빠는 그날따라 내게 이 사탕을 마음껏 먹게 해 주었다.
아빠가 이 사탕 많이 줄게, 가지 마. 응?
아직은 자식들 대하는 게 서툴렀는지. 내 기억 속에 있는 화나지 않은 아빠의 첫 모습이었다. 어린 다섯의 나이까지 한 번도 들어본 적 없었던 다정다감한 목소리였다. 어렴풋이 떠오르는 기억 속의 이야기. 진짜일까, 꿈이었을까. 23년쯤 지나도 그 기억이 생생하다면 아마도 사실에 가깝지 않을까 생각한다. 어머니께 여쭤보고 싶었다. 그때 동생 청명이는 뭘 하고 있었을까. 엄마랑 나갔을까, 나랑 집에 남았을까. 아니면 내가 더 어린 날에, 청명이는 태어나지도 않았던 걸까. 형은 어떤 마음이었을까. 아빠와 살지 않아도 된다는 설렘 가득한 마음이었을까, 아빠를 다시 볼 수 없을지도 모른다는 걱정 가득한 마음이었을까.
어린 삼 형제를 절로 데려가 모두 스님으로 만들고 싶었다는, 세월 속에 잊고 있었던 어머니가 해주었던 옛 말을 기억한다. 그렇게 삼 형제가 아버지를 버리고 그 좁은 집을 떠났다면 지금쯤 우리는 머리 깎은 중의 모습이었을까. 이따금씩 신도들 찾아오는 절간에서 목탁을 두드리며 불경을 소리 내어 읽는, 일평생 중생들을 위해 염불하고 기도했던 어머니의 길을 우리는 아무런 저항 없이 따라갔을까.
오늘은 비가 많이 내린다. 달님도 구름 뒤로 숨어 더 어두운 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