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십구재/사십구재

49재 - 육재

EugeneChoi 2025. 1. 8. 01:31

  승강기를 타고 22층으로 올라간다. 22층까지는 삼십 초가 채 걸리지 않았다. 복도 제일 끄트머리에서 두 번째에 위치한 집 현관 앞에서 멈춰 선다. 청명이가 익숙하게 똑 똑 노크를 하는 동안, 너는 천천히 도어락 비밀번호를 누른다. 현관문을 열자 큰방 문틀 너머로 허름한 갈색 면바지에 얼룩무늬 군야상 옷차림의 스님이 보였다. 스님은 양손으로 바닥을 짚고 일어나 너와 청명이를 반갑게 맞았다.

  안녕하세요 스님.
  어, 왔나. 어서 들어와 앉아.

  스님은 정오가 되도록 아무것도 들지 않고 방바닥에 앉아 햇호두와 피땅콩만 까고 있었다. 지난번에 사다 놓은 쌀과자의 포장지가 벗겨져 있는 것을 눈치챈 너는 안심한 듯 별안간 수줍은 미소를 지어 보였다. 보일러를 틀지 않아도 방 안은 따뜻했다. 그래서인지 집 안에 방치된 새빨간 대봉시들이 더 빨리 쪼그라드는 것도 같았다.

  여기서는 못살겠다. 사람들은 이런 데서 어떻게 사나? 죄다 아스팔트 바닥에 답답해가지고. 안 그래? 흙을 밟고 살아야 건강한 것이여. 여기 들어오고 나서 내가 몸이 안좋아. 그때 저 묘연사 있었을 때는 건강했는데. 밤낮으로 고물 하러 다녀도 힘들지가 않았는데, 여기서는 오전 일하고 들어와서 쉬어야 돼.
  그쵸. 저도 이런 아파트는 좀 답답하네요. 흙 있고 꽃나무 있는 자연에서 살고 싶어요.
  그래도 어쩌겠나. 나가라는데. 

  재개발을 이유로 퇴거 통보를 받았던 어머니와 스님은 정부로부터 저렴한 월세의 공공임대주택아파트 임시거처로 제공받았다. 하지만 개를 키울 수도 없고 사방이 높다란 건물들로 둘러싸인 환경이 낯설었던 스님은 연거푸 답답함을 토해냈다.

  혼자서 심심하시죠.
  나야 뭐. 사는 게 다 그렇지 않은가. 참. 개들은 잘 있디야?
  네. 보호소에서 훈련 잘 받고 있대요.
  훈련? 무슨 훈련?
  입양되려면 적응 훈련을 받아야 하거든요. 절에서만 쭉 지내왔으니까 다른 사람한테 잘 안 가려고 하잖아요. 다른 사람들에게 익숙해지는 그런 훈련들이요.

  청명이가 차분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한때 묘연사에서 스님과 어머니와 희로애락을 함께했을 애교 많던 강아지들, 지금은 보호소에서 생활하고 있는 강아지들을 생각한다. 그 강아지들의 모견, 부견들을 생각한다. 그 이전, 더 이전 세대의, 석천대사 염불소리 들으며 공덕을 쌓아갔을 묘연사 견공들을 떠올린다. 하늘의 부름을 받고 먼저 떠난, 너와 나이가 비슷했던 아이들은 지금쯤 어디에서 무엇하고 있을까. 개의 허물을 벗고 인간으로 다시 태어났을까, 윤회의 굴레에서 벗어나 상품상생으로서 정토에서 우리들을 기다리고 있을까. 
  너는 어머니를 지극정성으로 따랐던 아롱이를 떠올린다.

  예쁜 내 딸. 내가 가진 딸이 없어서 이런 예쁜 아롱이가 우리에게 굴러 들어왔나.

 
  갈색의 작은 몸에 요크셔테리어 믹스였던 애교 많은 아롱이를 너의 어머니는 제일로 아꼈다. 어머니가 의식을 잃고 얼마 지나지 않아 아롱이는 보호소에서 세상을 떠났다. 갑작스럽게 바뀐 환경에 스트레스를 많이 받았던 탓이었을까. 청명이가 보호소로 아롱이를 보러 갔을 때도 아롱이는 똬리를 튼 뱀처럼 제 몸을 말아 웅크리고서는 고개도 들지 않았다고 했다. 언제나 그랬듯 앙칼진 목소리로 짖지도, 으르렁거리지도 않았다고 했다. 그 작고 깨발랄했던 사랑스러운 아롱이가, 너와 청명이의 인기척을 멀리서부터 알아채고 꼬리를 흔들며 앙 앙 짖으면서 달려왔던, 그렇게 달려와놓고는 시멘트 진흙 범벅의 자그만 앞발 두 개로 너의 신발과 바지에 흰 도장을 쿡 쿡 찍어대던 그 아롱이가.

  폐에 물이 차서 죽었다고 한다. 사인을 전해 들은 너는 그 원인이 사실인지 알지 못한다. 아롱아, 너도 많이 울었을까. 겉으로 울 수 없어서 속으로 눈물을 쏟아내어 폐 속 가듯 물이 찬 것일까. 어머니 홀로 외로우실까 네가 먼저 극락에서 어머니를 기다리러 일찍이 이 세계를 떠난 것일까- 하고 생각할 뿐이다. 

  누구나 한 번 오면 한 번은 가는 거여. 너거들이 고생했다. 
  ...
  별 수 있나. 참. 너네 엄마 딱 십 년만 더 살다 가면 되는 건데. 뭐가 그리 바빠서 일찍 떠났나. 거 중환자실에서 빨리 꺼냈어야 했어. 중환자실로 들어가면 멀쩡한 사람도 병드는 거여. 아픈 눈만 고치고 빨리 꺼냈어야 했는데.

  청명이와 너는 더 이상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너의 어머니는 십 년도 훨씬 전부터 당뇨를 앓았다. 너는 생각하고 또 생각한다. 당뇨 관리가 그렇게도 어려운 것이었을까. 오랜 세월 당뇨를 갖고 있는 사람도 식단조절을 잘하여 삼십 년 이상 더 사는 경우도 허다한데, 어째서 너의 어머니는 그렇게 당뇨 관리가 되지 않았을까.
  한 때 너는 스님을 탓하였다. 당뇨에 도움이 좋다는 음식이 아닌 어머니가 먹고 싶다고 하시는 음식을 가리지 않고 사 오시는 스님을 원망했었다. 하지만 그 원망은 아주 잠시였다. 이따금씩 어머니를 찾아갈 때 카스테라 빵을 사서 가져간 너를 떠올린다. 어머니가 너에게 당뇨식을 사달라고 했을 때 비싸다는 이유로 사주지 않고 그저 당근 양파 배추 등 건강식 재료로 요리를 해주겠다던 너의 말을 떠올린다. 맛 좋은 음식을 포기하고 오래 살 바엔, 차라리 먹고 싶은 음식들 전부 먹으며 조금 일찍 죽는 것이 더 나을까- 생각했었던 너를 떠올린다. 그것은 네가 바라던 것이었을까, 너의 어머니가 바라던 것이었을까. 그것도 아니라면, 네가 어머니께 바라던 것이었을까. 

*
  너의 어머니는 왼쪽 발목 수술을 세 차례나 받았다. 뼈의 골밀도가 점점 약해지고 치료법도 없는 불치병이었다. 돌계단에서 발을 한 번 잘못 디뎌 넘어진 것이 발목이 똑 부러지고 말았다. 나이 육십밖에 되지 않았는데 양쪽으로 목발을 짚고 걸어 다녔다. 양쪽 발의 크기와 높낮이가 달라 목발이 없을 때면 되똥되똥 오리처럼 걸었다. 아주 천천히, 다시 또 넘어질까 걱정스러움 가득한 걸음걸이였다. 
  갑작스럽게 너의 어머니가 중환자실로 이동하게 된 건 작년 사 월이었다. 안면에 참을 수 없을 정도로 고통스러운 통증 때문에 병원을 가게 되었다. 그날부터 너의 어머니는 앞을 보지 못하였다. 병명은 안와 봉와직염이었다. 당뇨로 인해 안구로 가는 혈관이 막혀버린 것이다. CT로 촬영한 영상을 보니 빨갛게 피로 차 있어야 할 혈관들이 듬성듬성 하얗게 비어있었다.

  양안 실명. 오른쪽 눈은 회복이 불가능하대. 왼쪽은 상태가 호전된다면 어둡고 밝고 정도만 확인 가능하다네. 이것도 사실 어렵다고 해.

  의사의 말을 듣고 전달해 준 청명이의 메시지를 너는 기억한다. 당뇨로 인한 면역 저하로 축농증이 생겼고 이것이 주원인이었다. 면역력이 정상 수치인 일반인이었다면 가벼운 감기 수준으로 앓고 끝날 만한 병이, 너의 어머니에게는 치사율이 높은 공포스러운 병이었다. 축농증이 있는 부비동을 통해 곰팡이균이 혈관으로 침투했다. 그리고 그것이 안면 통증의 원인이었다. 

  어. 영명이냐... 엄마는 괜찮다...
  어머니 괜찮으세요?
  응. 금방 좋아지겠지... 영국에서 영어 공부 열심히 하거라. 엄마 걱정하지 말고.
  ...네. 공부 열심히 할게요.

  사람이 죽어가는 목소리를 너는 그날 처음 들었다. 왜 너는 몰랐을까. 열심히 공부하라는 그 말속에 '아들아, 무척 보고 싶구나'라는 말이 들어있었다는 것을. 따뜻하고 보드라운 자식 손을 한없이 그리워하는 어머니의 마음이 한가득 들어있었다는 것을. 아플 때 자식들이 곁에 없는 서러움을 왜 너는 알아주지 못했을까.

*
  양안이 실명되고 고작 두 달이 지난 후 너의 어머니는 의식을 잃었다. 코대뇌털곰팡이증. 부비동에서 시작한 곰팡이균의 감염이 혈관을 타고 흘러 흘러 안구를 넘어 대뇌까지 침투했다. 시간이 지날수록 좌뇌의 기능이 급속도로 떨어져 갔다. 좌뇌가 눈으로는 보이지도 않는 작은 곰팡이균으로 인해 잠식당하고 있었다. 학술정보를 찾아본 너는 그 병이 치사율이 오십 프로가 넘는다는 것을 알았다. 마음의 준비를 해야 할까. 아직 희망을 가져볼 만한 걸까. 머릿속으로 생각하고 끝없이 후회했다. 너는 한국으로 돌아갔어야 했을까. 힘들게 비자를 얻어서 일 년 동안 머무르는 영국을 떠나서, 어머니 손을 꼭 잡아주러 한국으로 돌아가야 했을까.

  가끔씩 너는 생각한다. 이 세상에 기적이란 것이 있을까. 제아무리 불치병이라고 하더라도, 자식이 부모 앞에서 재롱부려 부모를 미소 짓게 한다면 그 병이 깨끗이 나을 수도 있는 것일까. 옆에서 목소리를 많이 들려드리고 손을 한 번이라도 더 따뜻하게 잡아드렸다면, 기적적으로 그 병이 나을 수 있었을까. 혈관 속 곳곳으로 퍼진 곰팡이균이 이유 없이 별안간 힘이 빠져버려 소멸될 수도 있었을까. 굳게 막혀버린 새하얀 혈관이 갑자기 뻥 뚫려 시뻘건 혈액으로 채워질 수 있었을까. 네가 건네는 따뜻한 말 한마디에 곰팡이균이 녹아 사라져 버릴 수도 있지 않았을까.
  너는 죽기 전에 간절히 바라는 기적만이 이루어진다는 주인 없는 이야기를 떠올린다. '유언'이라는 그 기적이 나의 죽음으로써 이루어진다면, 과연 나는 지금 삶을 그만둘 자신이 있을까- 생각한다. 죽음이 두렵지 않았던 너는 그렇게 하고 싶었다.

  평행세계를 만들자.
  살며시 눈을 감고 부르르 떨리는 숨소리에 집중한다. 돌이킬 수 없는 과거의 순간으로 마음을 집중하고 그때의 그곳으로 돌아간다. 과거로 돌아가고 나면, 너는 지금까지 네 기억 속에 있었던 현실과는 다른 미래를 만들어내기 시작한다. 네가 항상 바라왔던 그 망상들로 옛날의 너 자신만큼은 불행하지 않기를 바라며 어려서부터 과거의 평행세계를 수도 없이 만들었던 너는, 오늘도 여전히 새로운 과거를 만들어낸다. 그리고 너는 생각했다. 현재가 아닌 과거로 돌아가 셀 수 없도록 많은 평행세계를 만들어내는 이건, 아마도 후회일 것이라고.

*
  스님이랑 점심을 함께하고 청명이와 셋이서 오손도손 앉아 이야기를 나누었다. 해가 저물고 어스름이 내리기 시작할 때 너는 수원으로 떠난다. 청명이도 봉천동의 자취방으로 서둘러 떠난다. 어색하게 손을 흔드는 스님을 뒤로하고 지하철에 몸을 맡긴다.
  가늘게 실눈 뜬 달 아래로 떼까마귀들이 전깃줄에 앉아 꾸벅꾸벅 졸고 있다. 싸락눈이 내리는 듯하더니 눈발이 점점 커져 함박눈이 되었다. 포슬포슬한 눈이 이불 되어 너의 머리와 어깨를 덮는다. 크기가 작은 눈은 떨어지면서 자동차 헤드라이트에 반사되어 빛나다가 미지근한 공기에 부딪혀 사라진다. 그 모습이 마치 사람의 마음과도 같다고, 죽고 나면 사라져 없어져버릴 수많은 생명들의 마음 같다고 너는 생각했다. 
  함박눈이 더운 공기에 비로 모습을 바꾸었다가, 이내 다시 함박눈으로 모습을 뒤집는다. 올 겨울은 유난히 눈이 많이 내린다. 오재 때처럼 제사상을 차린다. 절을 올리고 기도를 한다. 

  변성대왕님. 저희 어머니께서는 뱀을 무서워하셨습니다. 또 기절을 참 잘하셨습니다. 부디 저희 어머니께서 놀라 기절하지 않도록 독사지옥만큼은 피할 수 있도록 해주십시오. 부탁드리옵니다. 어머니를 애민히 여겨주시옵소서. 저희 어머니를 불쌍하게 여겨주시옵소서. 저희 어머니를 안 아프게 해 주시옵소서. 부탁드리옵니다. 나무묘법연화경. 나무묘법연화경. 나무묘법연화경. 나무아미타불 관세음보살. 나무아미타불 관세음보살. 소원선취진언 옴아오카살바다라 사다야시베훔...